Alice Walker - "Beauty : When he other dancer is the self"

 내 마음


학부시절 영어 수업때 배웠던 Alice Walker의 수필 한편이 갑자기 떠올랐다.

일본은 독도에 혈안이 되서 난리고, 정치인들은 수억대의 사과상자를 들고 다니느라 바쁘고, 드디어 기름값은 1700원, 아무리 무서운 병에 걸려도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던 보험의 광고들은 대부분이 엉터리였는데다가, 승엽이는 며칠째 삼진만 당하고 있다.
나는 몇 달째 어느 누구와도 함께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뉴스 속에서 흘러나오는 현실에서의 사건들이 부러진 날개로 인해 외딴 섬안에 갇혀있는 내 주위로 수채화의 배경처럼, 그러나 흐리고 둔탁하게 채색되어저 간다.

거울앞에 섰다.
내 안에 담겨있는 세상의 모습은 몹시도 우울하다. 황사먼지 가득한 빗줄기가 아직도 내안에서는 그치지 않고 있다.

Alice는 자신이 만들어 왔던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자신의 거울 앞에서 발견하게 된다.
현실의 세계, 현실의 우리나라, 그리고 현실에 갇혀있는 나의 세상이 Alice가 보았던 세상과 대비가 되어 교차하면서, 내 가슴을 몹시도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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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Walker
"Beauty: the other dancer is the selff"

  











***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약간의 오역에 대한 변명  ***

1) 나는 영문학 전공자가 아니고, 인문계열조차도 아닙니다. 상당부분 잘못된 역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이것은 단순한 블로그 포스트일 뿐입니다. 나 자신이 크게 감명받은 한 작품에 대해 온라인 상에서 함께 공감하기를 원합니다.

2)원문에 시 한편이 중간에 있지만, 시를 번역하는 일은 깊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기에 제일 뒤로 빼서 원문으로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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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Walker
Beauty : When the other dancer is the self


 1947년 어느 맑은 여름날, 눈이 아름답고, 주변 사람들을 뒤집어지게 할 만큼 재치를 가진, 거기에 항상 유쾌하며, 살이 찐 나의 아버지가 그의 여덟 명의 아이들 가운데서 농산물-가축 품평회가 열리는 장터에 어떤 아이를 데려가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나의 어머니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을 준비시키느라고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던 것이다. 허둥지둥 꼰 끈으로 내 머리에 리본을 묶는 어머니의 손가락 관절의 압력에 대항해 나는 목덜미를 굳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윗마을에 사는 부유하고 나이 많은 백인 여자의 운전기사로 일했다. 그녀의 이름은 Miss Mey. 수마일에 걸친 마을 대부분의 땅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집까지도 모두 그녀의 소유였다. Mey씨에 관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한번은 어머니에게 그녀의 집을 청소하고, 목련나무 잎 더미를 긁어내고, 가족들의 옷을 세탁하는 일들에 대한 대가로 35센트를 제안했지만, 돈 한푼 없고, 여덟 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게다가 고질적인 귀앓이로 고생까지 하고 있던 어머니가 그 돈을 거절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1947년의 이런 일들을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단지 두살 반 된 아기일 뿐이었으니까.

그 당시 나는 아빠가 가는 곳은 어디든 함께 가고 싶어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을 보는 것이 좋았었던 것이다. 장터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다는 것은 이미 우리 남매들 모두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차에는 여덟 명의 아이들 중 단지 3명 만이 앉을 자리가 있을 뿐이었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녹말풀을 먹인 원피스를 빙그르르 돌리고, 담갈색 광택이 나는 에나멜 가죽으로 만든 구두와 라벤더 향의 양말을 뽐내기도 하고, 머리에 묶은 리본이 나풀거리도록 머리를 흔들기도 하면서 양 손을 엉덩이에 올린 채로 아버지 앞에 서서는

 "나를 데려가세요, 아빠"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내가 제일 예뻐요!"

 그 후에 Mey 씨의 빛나는 검은 승용차 안에서 다른 운 좋은 아이들과 함께 뒷좌석을 나누어 타고 있는, 또 장터에서 너무너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날 밤 나는 운이 없었던 언니, 오빠들에게 회전목마를 탔던 것, 살아있는 닭을 먹는 남자와 곰인형 등에 대한 기억들을 그들이

 "그걸로 충분해 Alice, 이제 그만 입다물고 잠자리에 드는 게 어때?" 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떠들어댔다.


 1950년 부활절 날, 나는 넝마(벽지, 직물 등의 장식이나 금속 피복에 쓰이는 분말 모양의 섬유)와 스캘럽(가리비 모양의 장식)으로 감침질이 된 녹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Ruth언니가 손수 만든 것이다.) 그 드레스에는 부드러운 견수자로 짠 패티코트와, 각 스캘럽에는 작은 연분홍의 장미가 달려있었고, 나의 새 구두는 담갈색 광택이 나는데다가 T자로 끈을 묶을 수 있는 에나멜 가죽 구두였다. 당시 나는 여섯 살이었고, 그 때까지 내가 들었던 것 중에서 가장 긴 부활절 연설을 익혔다. 내가 두 살 때 했었던 "순결하고 하얀/아침의 만발한/부활절의 백합" 정도와는 비교도 안되는 것이었다. 연설을 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나는 사랑과, 자부심과, 기대의 거대한 물결에 휩싸였다. 교회 안의 사람들은 모두 새 크리놀린(뻣뻣한 천)의 살랑거리는 소리를 일제히 멈추었고, 청중들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드레스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여성스러움에 테를 둘러 장식을 마친 것은 바로 나의 영감이었다. 그들은 비밀스럽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저 애 꽤나 골치덩어리겠어" 그들은 아주 즐거워하며 속삭였다.

당연히 나는 다른 말더듬이들이나 최악의 경우 연설 내용을 잊어먹고 마는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말을 더듬지도 않고 잠시의 끊임도 없이 연설을 마친 것이다. 사람들의 언어에 '미(美)'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이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단어들,

 "오, 너무너무 '깜찍한' 소녀로군!"

 이런 소리들이 나의 연설 중에 떠다녔다.

 "게다가 담각이 대단한걸!"

 그들은 기꺼이 찬사를 이어 나갔다. 나는 이 날의 사려 깊은 찬사들에 대해서 그들에게 감사한다.


  귀엽다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 귀여움은 끝나버렸다.

 나는 여덟 살 말괄량이가 되었다.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 그리고 체크 무늬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다녔다. 모두 빨간색이었다. 놀이친구는 두 살, 네살이 더 많은 오빠들이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검은색과 녹색을 입는다. 토요일마다 우리는, 어떤 날에는 어머니도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서부영화였다. 목장에 있는 집에 돌아올 때는 Tom Mix, Hopalong Cassidy, Lash Larue 등의 배우 흉내를 낸다. (심지어 우리가 기르는 개에게까지 Lash Larue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무법자가 되어 가축도둑들을 추격하고, 곤경에 처한 여자들을 구출하기도 했다. 결국 나의 부모님들은 오빠들에게 총을 사주기로 하셨다. 물론 진짜 총은 아니다. 'BB탄'이라고 불려지는 구릿빛 탄환을 쏘는 것인데 오빠들은 새를 죽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여자였기 때문에 총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바로 인디언의 지위로 좌천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들 사이에는 커다란 거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빠들은 새로 얻은 총으로 주변의 것들을 향해 가릴것 없이 방아쇠를 당겨댔고, 나는 나의 활고 화살을 지켜내야만 했다.

 어느 날 나는 임시방편으로 양철판자에 몇 개의 지지대를 교차시킨 후 못을 박아 만든 '창고'의 꼭대기에 활과 화살을 들고 올라가서 멀리 들판을 향해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갑자기 오른쪽 눈에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순간 아래쪽에는 오빠가 그의 총을 떨어뜨린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오빠들이 내게 달려왔따. 눈이 얼얼했다. 나는 손으로 눈을 감쌌다.

 "만일 네가 부모님들께 이 일을 일러바친다면, 우리는 매맞게 될 거야. 너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물론 그런 걸 바라지는 않는다.

 "여기 철사 조각이 있다." 큰 오빠가 지붕에서 뭔가를 주워들며 말했다.

 "네가 여기 끝에 서있을 때 누군가가 이걸 던지는 바람에 다쳤다고 말해"

 아픔이 시작되었다.

 "알았어" 내가 말했다. "그렇게 말할께..."

 만일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면, 오빠들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도록 할 만한 다른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어머니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겠지...


 우리가 짜낸 거짓말이 부모님께 전달되었다. 부모님들은 현관의 벤치로 나를 데려갔다. 그들이 나의 오른 쪽 눈을 살피고 있는 동안 나는 왼쪽을 감고 있었다. 현관 아래쪽으로부터 지붕의 난간까지 타고 올라가는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것이 나의 오른 쪽 눈으로 본 마지막 풍경이다. 나무의 줄기, 가지, 잎사귀들이 흘러나오는 피로 얼룩져 보였다.

 나는 충격에 잠겼다. 처음에는 심한 열이 났다. 아버지께서 백합 잎을 동여매서 내 머리주위를 감싸주셨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한이 들어서 어머니께서 스프를 끓이셨다. 결국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모님들이 알게 할 방법은 없었다.

 그 '사고' 이후 한 주 정도가 지나서야 부모님들은 나를 의사에게 데리고 가셨다.


 "왜 이제서야 오신 겁니까?"

 나의 눈을 살펴보던 의사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눈은 공감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 쪽 눈이 멀게 되면 다른 한 쪽도 그렇게 되기 쉽죠."

"Eyes are sympathetic, If one is blind, the other will likely become blind too."


 의사의 말에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것은 정말로 나를 걱정시켰다. BB탄을 맞은 눈동자에 흉측한 백내장의 혼탁한 상처조직이 생겨났다. 내가 사람들을 쳐다보면 - 지금까지도 - 그들은 다시 나를 쳐다본다. 소녀가 가진 "예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녀가 가진 "상처"를 보는 것이다. 6년 동안이나 나는 고개를 들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어느 누구도 쳐다 볼 수 없었다.


 몇 년 후, 중년의 몇 번의 위기를 지내 온, 어머니와 언니들에게 그 '사고' 이후 내가 변했냐고 물어보았다.

 "아니" 그들이 곤혹해 하며 대답했다.


 "무슨 의미야?"


 무슨 의미냐고?

 그리고, 처음에, 네살 때 이 후의 뛰어난 재능들을 길러왔던 시골의 초라한 학교를 다닌 것은 내가 여덟 살이 될 때까지였다. 우리 가족은 그 '사고'가 발생한 곳에서 멀리 이사를 했다. 그 곳은 다른 주(州)였기 때문에 주변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친구들을 볼 때는 옛날 다니던 교회를 방문할 때가 고작이었다. 새로운 학교는 이전 주립 교도소로 쓰이던 건물로 차갑고 통풍이 잘 되는, 커다란 돌로 세워져 있었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내 아이들의 위압감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3층에는 찢겨져 나가서 일부분만 남아있는 거대한 원형의 날인이 있었다.

 "여기가 뭐하던 곳이니?"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내 뒤에서 뿌루퉁하게 서있는 여자 아이에게 물었다.

 "전기 의자야." 그녀가 말했다.

 그날 밤 전기의자에 대한 꿈을 꿨다. 소문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서 '튀겨져'버렸다고 한다. 나는 모든 학생들이 마치 범죄자들로 싹트고 있는 것만 같은 그 학교가 두렵기만 했다.

 "눈이 왜 그러냐?" 아이들이 위험스럽게 물어왔다.

 내가 대답을 안 하면(나는 아직 그 일이 '사고'인지 아닌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한번 싸워보자는 듯한 기세로 나를 밀쳐온다.

 철사 얘기를 만들어낸 오빠가 달려와서 나를 구해주었다. 하지만 나를 '보호'해 준것에 대한 허풍을 늘어놓는 것이 오히려 역겹게만 느껴졌다.

 그 학교에서의 고문과 같은 몇 달이 지나자, 부모님들은 옛날 마을의 이전에 다녔던 학교로 나를 돌려보내기로 결정하셨다. 나는 조부모님과 그들이 하숙을 시키고 있는 선생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전에 기르던 고양이 Phoebe의 방이 없었다. 이후로도 Phoebe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하숙을 하던 선생님이신 Yarborough씨는 나를 잘 보살펴 주었고, 피아노 치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 아프리카 사람과(그녀의 말로는 '왕자님'인) 결혼을 해서 그의 나라로 훌쩍 날아가 버렸다.

 옛 학교에는 날 사랑해주셨던 선생님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던 셈이다. 그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고, 나의 첫 아기 옷을 사주셨던 분이다. 삶을 인내할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그녀였다. 학교에서 '외눈박이 암캐'라고 불려지던 어린 소녀의 마음을 붙잡아주기 위해 끝까지 도움을 준 것도 그녀의 존재였다. 어느 날 나는 그녀의 코트를 꽉 붙잡고 내가 만족할 때까지 그녀를 깨물었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이 바로 나의 선생님이었다.

 어머니는 반나절 이상을 침대에 누워계셨다. 그런 모습은 결코 본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너무나 고통이 심해서 말을 할 수 조차 없었다. 귀에 종양이 있었던 것이다. 누워있는 어머니에게 곧 죽음이 직면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따뜻한 기름으로 치료 받았고, 뺨에 뜨거운 벽돌을 고정시키고 있어야 했다. 결국 의사가 도착했지만, 나는 조부님 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몇 주가 지나도록 나는 거의 깨어있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 아버지도 예전처럼 유쾌하지 않았고, 오빠들은 여전히 그들의 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고향으로부터 추방된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들이다.


 "너는 변하지 않았어" 그들이 말했다.


 결코 볼 수 없다는 고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열두살이 되었다. 친척들이 방문했을 때 나는 방 안에 숨어버렸다. 나와 동갑인 사촌 Brenda의 아버지는 우체국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간호원이었다.

 "안녕" 내게 있어서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는 그 '덩어리' 때문에 켤코 보여주기 싫었던 최근의 나의 학교 사진을 살펴보며 그녀가 인사했다.

 "그 눈 아직도 볼 수 없어?"

 "응"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려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날 밤, 거의 매일 밤 그런 것처럼,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내 눈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고래고래 소리쳤고, 내일 아침 전까지 깨끗해지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나의 눈동자를 미워하고 또 경멸한다고 말했다. 나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단지 아름다움을 위해 기도했을 뿐이었다.

 열 네 살이 되었을 때 Boston에 있는 오빠 Bill의 아기를 돌봐주며 용돈을 벌었다. 그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오빠였고 우리 둘 사이에는 강한 유대감이 있었다. 그와 그의 부인은 추한 모습에 부끄러워하는 나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곧 나를 지방 병원에 데려갔다. 그 곳에 있는 O. Henry라는 의사에 의해 그 '덩어리'는 없어지게 되었다. 여전히 푸르스름한 크레이터(운석이 떨어져서 생긴 분화구)가 작게 남아있기는 했지만 추한 흰빛의 흉터는 사라져버린 것이다.

 거의 그와 동시에 나는 고개조차 못 들고 다니던 소녀가 아닌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꿈에 그리던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 앞에서도 얼굴을 들고 있을 수 있었다. 또 많은 친구들 앞에서도 머리를 들고 있을 수 있었고, 수업 중에도 부활절 연설 때의 빈틈없었던 입술을 되찾게 된 것이다. 또한 거의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행운이 따랐던 나는 가장 인기 있는 학생, 퀸으로 뽑혔고, 졸업생 대표로 고등학교를 마쳤다. 역설적이게도 그 소녀는 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뽑혔다. 나중에는 '진짜' 총을 사용하는 남자친구에 의해 가슴에 두 번째 총을 맞게 되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이므로 나중에 하기로 하자.




 "너는 변하지 않았어" 그들이 말했다.

 그 '사고' 이 후 서른 살이 되었다. 한 아리따운 기자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나의 최근 발표된 책에 초점을 둔 잡지의 커버스토리를 쓸 예정이었다.

 "표지에 어떻게 나오길 원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매혹적으로?, 아니면 그 밖에 무엇이든지요?"

 "매혹적으로?" 라는 말은 신경 쓸 일도 없이 "그 밖의 무엇이든" 이라는 말이 내게 들린 전부였다. 갑자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진 작업 전날 밤에 잠을 충분히 잘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할 지에 대한 것뿐이었다. 만일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다면, 내 눈은 지쳐있게 되고, 장님들의 눈동자처럼 이리저리 방황하고 다닐 것이다.

 그날 밤 나의 연인과 침대에 누워서 내가 잡지의 표지에 실릴 수 없는 이유를 생각했다.

 "비열한 평론가들이 내가 다 팔려버렸다(상업성에 물들었다)고 떠들어 댈 거야" 내가 말했다. "가족들은 내가 스캔들에 휘말릴 책을 썼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하지만, 당신이 그걸 원치 않는 진짜 이유는 뭐지?" 그가 말했다.

 "그에대한 답으로 가능성이 있는 건!" 내가 몰아치며 말했다.

 "내 눈은 잘 정돈되어 있지 않잖아..."

 "충분히 정돈되어 있어" 그가 말했다. "더군다나, 이제 그만 당신의 눈과 화해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갑자기 기억이 났다.




   나의 기억

 내가 오빠 지미에게 총에 맞은 날에 대해서 별다른 기억이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내가 그날을 차가운 백합 잎으로 나를 치료하시던 아버지가 나를 선택한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일로 인해 내 안에서 고통과 분노가 일고 있었음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글세", 그가 말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아빠가 고속도로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차를 정지시키기 위해 몹시 애쓰셨던 모습이야. 어떤 백인 남자가 잠깐 멈추기는 했지만, 아빠가 딸을 의사에게 데려다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그는 그냥 차를 몰고 가버렸지."



   나의 기억

 처음으로, 내가 사막에 존재하고 있다 완전히 사막과 사랑에 빠졌고, 나는 그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다. 몇 년 전 그 때의 의사가

"눈은 서로 공감하고 있어요, 만일 한 쪽 눈이 멀게 되면, 다른 한 쪽도 멀게 될 수 있습니다."

라고 했던 말이 의식적으로 내게 와 닿았을 때, 나는 미친 듯이 세상에 던져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것, 저것을 닥치는 대로 보면서, 희미해지는 빛에 대항해서 세상의 표상(表像)들을 저장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막을 보는 것은 놓치고 있었다! 볼 수 없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에 대한 충격이 - 그리고 볼 수 있었던 25년 동안의 감사함이 - 사실상 내 무릎으로 까지 나를 내몰았다.

   그러나 결국,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나는 스물 일곱, 그리고 나의 딸 Rebecca도 거의 3살이 돠었다. 그녀의 생일 이후 그 아이가 자신의 엄마의 눈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라는 걱정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창피해 할까? 아마도 그렇겠지? 뭐라고 말하게 될까?

 아이는 매일 "Big Blue Marbe"이라는 TV프로를 본다. 그 프로는 달에서 보여지는 지구의 모습으로 매번 시작된다. 지구는 푸른 빛을 띠고, 희끄무레한 구름들이 그 주위를 소용돌이 치고 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 흘리게 된다. 마치 할머니가 계시던 고향 집의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만큼이나 말이다.

 어느 날 Rebecca를 낮잠 재우기 위해 구유에 내려 놓으려 했을 때였다. 갑자기 그녀가 나의 눈동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내 안의 어떤 것이 움찔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시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어린아이들은 신체적 차이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잔인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차이에 있어서 다른 문제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나는 Rebecca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녀는 우리가 서있는 곳, 구유 안의 그녀와 밖에 있는 나, 나의 얼굴을 면밀히 관찰했다. 아이는 보조개가 들어간 작은 손으로 마치 어머니처럼 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아주 심각하게 잠시 동안 살피더니 자기의 아버지처럼 법률가인양 말하는 것이었다. 마치 어떻게 해서든지 내 주의를 헛디디게 하려는 시도같이 느껴졌다.

 "엄마, 엄마 눈에 지구("World")가 있어요" - 마치 "놀라지 말아요, 그건 어리석은 짓이죠"라는 말을 가장해서 말하려 하는 듯이 - 그리고 조용하게, 그러나 아주 커다란 관심거리인양 말을 이어갔다.

 "엄마, 눈 속에 있는 지구("World") 어디서 얻은 거죠?"



   "Mommy, there's a world in your eye."

  "Mommy, where did you get that world in your eye?"


 대체로 고통들은 사라져갔다. (그래서? 나의 오빠들이 어른이 되어 그 때의 것보다 더욱 강력해진 BB탄 총을 그들의 아이들에게 사준다고 한들, 정작 자기들은 진짜 총을 가지고 다닌다고 한들 뭐가 어쨌단 말인가? 또 젊은 "Morehouseman(Georgia주, Athlanta에 있는 Morehouse대학에 다녔던 한 학생)"이 나의 파란 눈을 생각하다가 Trevor Arnett 도서관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한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나는 욕실로 뛰어가서 Rebecca가 중얼거리던 노래가 잠들어 멈출 때까지 울고 또 웃었다. 게다가 거울을 보며 깨달았다 내 눈 속에는 정말로 세상(World)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창피함과 분노와 내면 속의 시야 모든 것들이 나를 가르쳐 왔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사랑하고 있었다. 나의 눈동자가 지루한 일상 안에서 궤도를 벗어나 표류하고 피곤함에 지쳐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내 주의를 자극하며 흘러 떠다니는 말들에 대한 언급을 회피할 수 있는(한 친구는 그것을 '목격자 인내하기'라고 불렀다.) 것들 조차도 나의 인격에 몹시도 적합하고, 심지어 나의 개성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Stevie Wonder의 노래 "Always"에 맞춰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 (그 노래의 원 제목은 "As"이지만 나에게는 "Always"로 들렸다.) 그날 밤이 다 지나도록 내 삶의 어떠한 나날 보다 더 큰 행복과, 기쁨에 겨워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다른 댄서들도 분명히 올바르게 삶을 지내 왔다.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그녀는 아름다웠고, 완전했으며,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On Sight
 
 
I am so thankful I have seen
  
The Desert
 
And the creatures in the desert
 
And the desert Itself
 
 
 
The desert has its own moon
 
Which I have seen
 
With my own eye
 
There is no flag on it
 
 
 
Trees of the desert have arms
 
All of which are always up
 
That is because the moon is up
 
The sun is up
 
Also the sky
 
The stars
 
Clouds
 
None with flags
 
 
 
If there were flags, I doubt
 
The trees would point
 
Would you?
 
 

by Soliman | 2006/08/13 18:57 | 내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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