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20일
이영애 사모님 CF를 보다.
이영애 사모님 CF를 보다.
아름다움이라는게 이런걸까?
......
나는 이영애 팬이다.
하지만 나는 TV를 자주 보지도 않을 뿐더러, 연예계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 오늘 하루동안 유일하게 내 관심을 집중시킨 뉴스는 미국이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조건으로 한국전의 종결을 선언할 수 있다는 기사다 - 나쁜 자식들!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미국에 대한 불만이 내게서 떠나가게 될까? -
한 십여년 전에는 여고생들이 많은 어느 분식점에서 TV에 나온 서태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쟤가 누구야?"
라고 말하는 바람에 분식점 안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경험까지 있다.
이런 내가 연예인 한 사람의 팬이라고 한다면 좀 우스운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난 이영애를 무척 좋아한다.
이유가 뭐냐하면,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
예쁘지 않은가!
나는 예술을 공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써 美에 대한 사고의 깊이가 일반 사람들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까 적어도 메스컴이 조작해낸 미적 기준에 나를 맞춰가서는 안된다는게 나의 지론이다. 내게 있어서 그건 유치한 경험일 뿐인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들을 "유치하다"와 등호관계에 둔다. 물론 다이어트를 조장하는 남자들은 더 유치하다.
그리고 이보다 더더욱 유치찬란한, 아주 기억에 남는 사건이 몇년 전에 있었는데 어느 중학교 미술선생님이 자신의 홈피에 올린 자신과 부인의 누드사진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교육부가 당사자를 징계했던 사건이다. 교육계에 발을 들여놓기 싫은 이유는 이것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외모나 겉보기만으로 내용을 판단하는건 그 자체로 죄악이 아니냔 말이다.
어쨌든...!
내게도 이영애는 예뻐보인다. 나도 결국 어쩔 수 없이 현대를 살아가는 남자 중의 하나일 뿐인걸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예쁘긴 예쁘다....쩝!!!
두가지 아이러니
성가대를 오랬동안 지휘했다. 성가대는 사설 합창단과는 좀 다르게 운영되어야 한다는건 이 포스트에 드러나는 나의 두번째 지론이다. 그건 뭐냐하면 노래실력이 단원입단의 첫번째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가대의 본질은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니 노래를 잘해야 하는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가대의 진짜 본질은 노래하는게 아니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이 성가대를 이루는 합창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럽다.
내게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엄석대'로만 느껴지는 미국이 존재하는 이 세상이 그래도 아름다울 수 있는건 바로 윗단락에 언급한 아이러니들 때문이 아닐까?
노래를 못해도 성가대에 들어가 노래할 수 있는 것 처럼, 운동을 못해도 운동을 즐길 수 있다. 타고난 몸치에 약골이라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 것만 같았던 내가 어렸을때는 동네야구 투수였으며, 쿵후를 일년 넘게 배웠고, 한달정도만 있으면 수영 연수반에 들어간다.
성가대원들에게 프로 합창단만큼 노래를 잘 하라고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수영 강사들이 내게 접영선수들 만큼의 파워와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노래를 통해, 스포츠를 통해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끽할 수가 있다.
그러니 미국이 지멋대로 한국전을 종전시키던 말던 세상엔 그 반대편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움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은 전적으로 사실인게다.
이것이 세상이 가진 첫번째 아이러니다.
못난 것들 속에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영애의 사모님 CF를 보며 한참 웃고 있는데 TV에서 이상한 프로를 한다.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어떤 한 사람이 어느교회에서도 목회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얼핏 흘러지나간다. 이유가 웃긴다. 아니 참으로 유치하다. 안면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두가지 이미지가 서로 교차해간다. 하나는 화상으로 온몸이 휘감긴 한 영혼이 고통을 딛고 예수를 바라보며 희망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의 내용을 자신의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형상이고, 다른 하나는 소망으로 고통을 딛고 일어선 한 영혼이 교회로부터 배척되어 추운 곳에서 어렵게 일궈낸 자신의 소망을 소진시키고 있는 형상이다.
아름다움 뒷편에는 추하고 더러운 욕지거리들이 있다.
그건 시기와 질투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현대의 교회들이 욕을 먹고 있는걸까. 안면장애가 목회자로서의 길을 방해하는 근본적 원인이 되는 세상이라면 그 이면에는 추하고 더러운 것 그 이상이 자리잡고 있는게 분명하다.
.......
슬픔에 잠긴,
화상을 입어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을 한 예수의 형상이 내 골을 에리고 지나간다.
세상은 아름답지만 그 반대편에 추함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 추위와 고통을 세상이 다스려내지 못한다면 세상은 진정으로 아름다와질 수 없다. 세상은 외모와 겉모습을 아름답게 가꿀 수는 있지만, 인간의 내면 깊숙히까지 그 아름다움을 승화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이 가진 두번째 아이러니다.
두번째 아이러니를 가진 파편들...
예수가 없는 교회들.
가장 많은 구제와 가장 진보된 인권을 주창하고 있는 미국의 가장 거대한 군사력.
평화를 갈망하는 세상들이 자신이가진 핵을 폐기하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이영애가 가진 아름다움에 비교되지 못 할 또다른 아름다운 사진 ...
그건 어느 신부의 사진이다.
아름다움이라는게 이런걸까?
......
나는 이영애 팬이다.
하지만 나는 TV를 자주 보지도 않을 뿐더러, 연예계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 오늘 하루동안 유일하게 내 관심을 집중시킨 뉴스는 미국이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조건으로 한국전의 종결을 선언할 수 있다는 기사다 - 나쁜 자식들!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미국에 대한 불만이 내게서 떠나가게 될까? -
한 십여년 전에는 여고생들이 많은 어느 분식점에서 TV에 나온 서태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쟤가 누구야?"
라고 말하는 바람에 분식점 안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경험까지 있다.
이런 내가 연예인 한 사람의 팬이라고 한다면 좀 우스운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난 이영애를 무척 좋아한다.
이유가 뭐냐하면,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
예쁘지 않은가!
나는 예술을 공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써 美에 대한 사고의 깊이가 일반 사람들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까 적어도 메스컴이 조작해낸 미적 기준에 나를 맞춰가서는 안된다는게 나의 지론이다. 내게 있어서 그건 유치한 경험일 뿐인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들을 "유치하다"와 등호관계에 둔다. 물론 다이어트를 조장하는 남자들은 더 유치하다.
그리고 이보다 더더욱 유치찬란한, 아주 기억에 남는 사건이 몇년 전에 있었는데 어느 중학교 미술선생님이 자신의 홈피에 올린 자신과 부인의 누드사진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교육부가 당사자를 징계했던 사건이다. 교육계에 발을 들여놓기 싫은 이유는 이것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외모나 겉보기만으로 내용을 판단하는건 그 자체로 죄악이 아니냔 말이다.
어쨌든...!
내게도 이영애는 예뻐보인다. 나도 결국 어쩔 수 없이 현대를 살아가는 남자 중의 하나일 뿐인걸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예쁘긴 예쁘다....쩝!!!
두가지 아이러니
성가대를 오랬동안 지휘했다. 성가대는 사설 합창단과는 좀 다르게 운영되어야 한다는건 이 포스트에 드러나는 나의 두번째 지론이다. 그건 뭐냐하면 노래실력이 단원입단의 첫번째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가대의 본질은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니 노래를 잘해야 하는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가대의 진짜 본질은 노래하는게 아니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이 성가대를 이루는 합창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럽다.
내게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엄석대'로만 느껴지는 미국이 존재하는 이 세상이 그래도 아름다울 수 있는건 바로 윗단락에 언급한 아이러니들 때문이 아닐까?
노래를 못해도 성가대에 들어가 노래할 수 있는 것 처럼, 운동을 못해도 운동을 즐길 수 있다. 타고난 몸치에 약골이라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 것만 같았던 내가 어렸을때는 동네야구 투수였으며, 쿵후를 일년 넘게 배웠고, 한달정도만 있으면 수영 연수반에 들어간다.
성가대원들에게 프로 합창단만큼 노래를 잘 하라고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수영 강사들이 내게 접영선수들 만큼의 파워와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노래를 통해, 스포츠를 통해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끽할 수가 있다.
그러니 미국이 지멋대로 한국전을 종전시키던 말던 세상엔 그 반대편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움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은 전적으로 사실인게다.
이것이 세상이 가진 첫번째 아이러니다.
못난 것들 속에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영애의 사모님 CF를 보며 한참 웃고 있는데 TV에서 이상한 프로를 한다.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어떤 한 사람이 어느교회에서도 목회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얼핏 흘러지나간다. 이유가 웃긴다. 아니 참으로 유치하다. 안면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두가지 이미지가 서로 교차해간다. 하나는 화상으로 온몸이 휘감긴 한 영혼이 고통을 딛고 예수를 바라보며 희망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의 내용을 자신의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형상이고, 다른 하나는 소망으로 고통을 딛고 일어선 한 영혼이 교회로부터 배척되어 추운 곳에서 어렵게 일궈낸 자신의 소망을 소진시키고 있는 형상이다.
아름다움 뒷편에는 추하고 더러운 욕지거리들이 있다.
그건 시기와 질투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현대의 교회들이 욕을 먹고 있는걸까. 안면장애가 목회자로서의 길을 방해하는 근본적 원인이 되는 세상이라면 그 이면에는 추하고 더러운 것 그 이상이 자리잡고 있는게 분명하다.
.......
슬픔에 잠긴,
화상을 입어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을 한 예수의 형상이 내 골을 에리고 지나간다.
세상은 아름답지만 그 반대편에 추함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 추위와 고통을 세상이 다스려내지 못한다면 세상은 진정으로 아름다와질 수 없다. 세상은 외모와 겉모습을 아름답게 가꿀 수는 있지만, 인간의 내면 깊숙히까지 그 아름다움을 승화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이 가진 두번째 아이러니다.
두번째 아이러니를 가진 파편들...
예수가 없는 교회들.
가장 많은 구제와 가장 진보된 인권을 주창하고 있는 미국의 가장 거대한 군사력.
평화를 갈망하는 세상들이 자신이가진 핵을 폐기하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이영애가 가진 아름다움에 비교되지 못 할 또다른 아름다운 사진 ...
그건 어느 신부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이미 아래 사이트에 공개된 사진이기에 복사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의 개인 허락을 받지 않았으므로 매우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행여나 복사하실 경우 신중을 기해주셨으면 합니다.)
두가지 이미지가 다시 나의 골을 에리고 지나간다.
엑스캔버스하는 이영애의 화사한 미소와 지체장에 2급의 신랑을 만나 결혼식을 올리는 한 신부의 사진
......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뭘까
......
# by | 2006/11/20 02:40 | 현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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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밟는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래의 신부가 아름답다라고 얘기할런지도 모르겠으나, 뭐 그건 상황에 따른 경우이고, 그렇다 할 지라도 그냥 저는 아름다운것도 이영애가 더 아름다운듯 합니다.
동정과 어설픈 박애는 제 체질이 아닙니다. ^^;;
은혜가 먼저냐? 화음이 먼저냐를 고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남들은 교회 성가대니까 은혜로워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화음이 맞고 노래를 잘해야 은혜로운거지 어떻게 은혜로만 성가대를 운영할 수 있는가? 라는 딜레마에 빠진적이 맍았죠.
결국은 성가대 연습 시작 기도도 싫어지더군요. ㅎㅎ--여담..
이미 오래전 20대 때 얘기 입니다.
제일 안타까운게 어느 신학과 졸업생이 어느 교회에서도 목사로서 임명되지 못하고 있다는건데요... 그 사람은 목회자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자 굴삭기 같은 중장비 자격증을 대여섯개나 땃다고 하더군요, 그나마도 취업은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속세가 가진 편협됨이 교회내에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