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


며칠전,
많은 정성을 들여 구입했던, 몹시도 애착을 쏟아온 소니 바이오 노트북 TR-L이 먹통이 되어 버렸다. 이방법 저방법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다는 결론이 날 때 까지, 멈춰버린 노트북과 씨름했지만 결국 고칠 수가 없었다. 이제 남은 단 한가지 방법이라곤 하드를 포멧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기로에 서있다. 이전에도 포멧하면서 파일들을 날려먹은 아픔의 기억이 내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이후로 다시 시작해서 힘들게 모아왔던 추억들이 하드안에 저장되어 있다. Classical Analysis, Abstract Algebra등등의 원서를 그대로 모두 워드로 작성해서 모아둔 파일, 또 열심히 공부했던 Mathmatica notebook 계산파일들, 직접 작곡한 20여곡의 성악곡, 또 성가대에서 근 일년치를 써먹을 수 있도록 힘들여 그려왔던 성가 악보들까지 저장되어 있다. 음........................ 도대체가 돈으로 따질 수가 없는 자료들이다.
이런 밥팅.... 왜 백업을 안해두었을까.....밥팅, 밥팅, 밥팅....

어떻게 할까.....음......

" '그까이꺼~~'  추억은 하나하나 다시 만들어 나가면 되고, 작곡한 노래들이야 내 머리속에 다 있잖아. 악보들은 힘들더라도 다시 그리면 그만이지!"

내겐 오로지 나의 소중한 노트북과 다시 화해하고 잘 지내고 싶은 일념 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



복구 CD를 드라이버에 삽입했다.

"디스크의 모든 데이터가 삭제됩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예" 버튼을 클릭해버렸다.

이제 좀 있으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예전처럼........

....

"앗~! 이게 뭐야."

거의 한시간이 넘도록 힘차게 복구 CD가 돌아가더니 갑자기 컴퓨터의 모든 작동이 멈춰버렸다.

...

그 후로 지금까지 나의 노트북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조만간 시간내서 AS 보내야지..... 언제가나.

컴퓨터 없이 며칠을 지냈다. 재미 없는 일상의 연속이 계속되고.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누나들과 매형들이 와서 북적대니 집안이 난장판이 된다. 이럴땐 혼자라도 나가 있는게 오히려 편하다.


나는 다시 방랑자로다

북적이는 연휴의 거리.
많은 삶들 틈 속에서 조용히 고독을 즐기려는데, 뭔가가 내 눈을 이끈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다.


"앗~! 노트북!"

듀얼코어에 램이 1G, CPU는 2G를 근접, 용량이 120G, 거기에 비스타... 디스플레이가 환상이다. 내앞에 이영애가 나타난다고 한들 지금처럼 가슴이 심하게 요동하지는 않으리라!'
'이처럼 아름다운 노트북이 있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어..."

나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며칠 전에는 꿈속에까지 나타나고야 말았다. 못된 꿈이다.




'사버릴까?"

'망가진 노트북은 어쩌고?'

'그거야 원래 내탓이 아니었어!. 내가 고장낸게 아니야. 지가 혼자서 나가버린 거라고...'

'...... 젠장, 그래도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는 녀석이라면 고쳐서 써야 맞는거지?'

'노트북 새로 살 돈으로 소액 펀드라도 하나 가입하던지, 하다못해 예금으로라도 남겨놔..... 지금 은행 잔고 제로잖아....'

'게다가 아직 비스타는 호완성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라고"



'........'


하지만.

'.... 옛 노트북은 너무 느린걸.... 피날레 악보 그릴때도 그렇지. Math Equation 입력할 때는 어떻고!!! 얼마나 버벅대는지 알잖아... '

'내게 좀 더 빠른 노트북이 있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처럼 초라해 지지는 않았을꺼야... 젠장... 하지만 그거, 어차피 나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핑계를 대나! 비겁하군. 노트북 때문에 내가 초라해진게 아니야. 오히려 스팩과 하드 용량을 생각지도 않고 사용해 온 내가 잘 못인게지. 대체 40G밖에 안되는 하드를 35G가 넘게 데이터를 저장해서 쓴다는게 말이 돼? 고장난건 내탓이니 오히려 내가 노트북에게 잘 사용하지 못하고 고장내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거 아니야?'

'젠장.... 하다못해 램이라도 하나 더 껴서 사용해 주는 정도의 성의만 보였다면 지금의 이 상황까지는 몰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그래도 사실을 따져보자. 난 그냥 신형이라는 이유 하나에 끌리고 있는것 뿐이다. ... 그 뿐이라고...!'



...


'아니 그렇지 않아. 난 세상에 이렇게 멋진 다른 컴퓨터가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거야...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사고싶어'

내일 날이 밝으면 사러갈 생각이다.


어차피 이번주 안에 학생들 성적표와 출석부 정리하려면 컴퓨터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비용이 만만 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갖고싶다.

아무리 많은 비용을 치루더라도 .....


갖고만 싶다.

전자 제품 매장에 진열되어 있던 새 노트북의 자판위에 손가락 끝이 닿았을 때의 그 감촉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 감촉은 날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전 노트북을 처음 소유하게 되었을 때의 그것을 잊게 만드는 모양이다.

그럴 수는 없는데
그럴 수는 없는데





....


 

by Soliman | 2007/02/19 11:31 | 우울한날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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